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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왜 폴렌타 속에서 끓는가』, 아글라야 페터라니, 배수아 역, 워크룸프레스, 2021 폴렌타는 냄비의 한 종류일까? 아니면 수프 같은 것? 배송된 책을 앞에 두고 냄비인지 수프인지 모를 폴렌타라는 물체 안에서 끓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떠올렸다. 이 책은 편집자의 서문으로 시작된다. 서문에 의하면 이 책은 “여러 언어를 알았지만 자신의 언어를 갖지 못했던 이가 자신이 택한 언어로 쓴 자전적 글”이자 “이야기가 최소한의 말들을 징검돌 삼아 뛴” 기록이다. ‘자전적’이라는 설명을 보고 작가 연보를 먼저 읽을지 아니면 소설을 읽은 후에 연보를 읽을지 망설였다. 그게 대체 무슨 상관이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자전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소설에서 이 순서는 중요할지 모른다. 나는 연보부터 읽기를 선택했다. 그녀는 서커스가 직업인 부모에게서 태어나 서커스단과 여러 나라를 여행했으며, 정규 교육을.. 2023. 3. 28.
R.O.Kwon, 테레사 학경 차의 자기 설명에 대한 급진적 거부 테레사 학경 차의 자기 설명에 대한 급진적 거부* 최근 재출간된 한국계 미국인 작가 테레사 학경 차(이하 '차학경')의 작품 『딕테( Dictee)』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서사로 고통을 표현해야 한다는 압력을 거부한다. R.O.Kwon(권오경) * 이 포스팅은 THE NEW YORKER에 실린 권오경 작가의 글 를 한국어로 옮긴 것입니다. 한국계 미국인 작가이자 아티스트인 차학경의 대표작 『딕테』는 1982년 출간됐다. 차학경은 이 책이 세상에 나오자마자 경비원에 의해 강간 살해당했다. 차학경의 글과 마주치기 전 내가 알고 있던 건 차학경이 언어, 비디오, 퍼포먼스, 오디오, 오브젝트를 다뤘고 일찍 죽었다는 것이다. 다른 한국계 미국인 작가들이 차학경의 이름을 수호성인이나 선대처럼 언급하는 걸 들은 적.. 2023. 1. 29.
우주에서 우주를 짓는 사람: 영화 <가가린> 리뷰 '실감나는 우주'라는 유튜브 채널이 있다. 우주의 크기, 빛의 속도 혹은 블랙홀처럼 도무지 우리가 실감할 수 없는 것들을 실감하도록 돕는 영상이 올라오는 그 채널을 자주 들여다본다. 물론 그 실감이라는 것이 얼마나 실감인지는 알 수 없으나 실감에 도움을 주긴 한다. 우주라는 개념에서 공포를 느끼는 사람도 있다지만 나는 안도를 느끼는 쪽이다. 먼지라는 이름도 붙지 못할 만큼 미미한 존재임을 확인하는 것만이 효과적으로 불안을 가라앉힌다. 영화 의 주인공 유리는 가가린 아파트(Cité Gagarine)에 사는 흑인 소년이다. 1960년대 초 프랑스 파리 외곽 이브리쉬르센 지역에 지어진 이 아파트에는 '최초의 우주인'인 유리 가가린의 이름이 붙여졌다. 1961년 4월 12일 소련의 유리 가가린은 지구 밖으로 나.. 2023. 1. 23.
230120 2023년 1월 20일 금요일은 바빴다. 눈으로 보느라. 집밖으로 나가는 건 약간의 결심이 필요한 일이므로 되도록 결심의 횟수를 줄이기 위해 가고 싶었던 것을 모아두었다 하루에 다니는 편이다. 휴직 기간이라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오늘 본 것들의 목록을 우선 써두려고 한다. 각각에 대한 소회나 관련해서 더 알아보고 싶은 것, 더 알게 된 것들은 생각날 때마다 추가해두고자 한다. (접힌 부분을 열어보면 글이 나옵니다.) 1.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더보기 문신(文信)은 1922년 일본 규슈(九州)의 탄광지대에서 한국인 이주노동자와 일본인 여성 사이에서 태어났다. 운명이든 우연이든 그의 이방인으로서의 삶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다섯 살에 아버지의 고향 마산 땅을 밟은 그는 조모 슬하에서 유년기를 보내고, 열.. 2023. 1. 21.